Les Vacances Cyber Museum
벨기에 왕립 미술관 - 고전미술관 15~16세기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1 |
2
작 품 명
: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소 장 처
:
벨기에 왕립 미술관
작가
:
히에로니무수 반 아켄(일명 보쉬,?-1516)
작품구분
:
회화
작품규격
:
참나무 목판에 템페라, 119.5x133.5cm (중앙 패널), 53x131.5cm(좌우 패널)
사 조
:
르네상스
제작년도
:
16세기
보쉬는 독일 아헨에 근거를 두고 있던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이 라틴 어로는 히에로니무스로 불리지만 원래는 에로엔인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제롬 보쉬라고 한다. 그의 작품들이 유럽 곳곳의 박물관에 흩어져 있고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이 틀리기 때문에 전혀 다른 화가로 오인되기도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화가였고, 일찍이 네덜란드 어로 ‘에스 헤르토겐보쉬s’hertogenbosch’로 불리는 지방에 정착을 했다. 이 지방 이름에서 보쉬Bosch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원래 뜻은 ‘숲’을 가리킨다. 보쉬는 1516년 숨을 거둘 때까지 화가로서 명성을 유지하며 지냈다. 고관대작과 고위 성직자 그리고 부호들만 회원이 될 수 있었던 성모 협회의 회원이기도 했다. 보쉬가 살았던 시대는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과도기였고 그의 그림들은 이러한 과도기의 시대적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인기를 얻었다. 민중들의 삶에 근거한 그림을 그리면서도 보쉬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띤 그림들을 통해 인간의 타락과 허위 의식 그리고 광기 등을 풍자하고 비판했다. 그가 그린 세 개의 패널로 구성된 삼절화인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은 이러한 그의 화풍이 가장 잘 나타난 그림 중 하나다. 성 안토니우스는 서기 3세기 무렵 이집트에서 살았던 부유한 지주였다. 20세 되는 해 안토니우스는 전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사막으로 나아가 수도 생활을 시작해 105살 때까지 살았다. 하지만 처음 15년 간의 수도생활은 안토니우스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련과 유혹의 연속이었다. 그림의 왼쪽 패널을 보면 악마에게 끌려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동료들에 의해 구출되어 다시 자신의 움막으로 돌아오는 성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 패널은 음욕, 탐식 등 각종 육체적 쾌락의 환상에 시달리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중앙 패널에는 기도에 몰두하며 온갖 유혹을 이기려고 하는 성자의 모습이 보인다. 벨기에 왕립 미술관에 있는 이 그림은 현재 리스본에 있는 먼저 그려진 그림을 다시 그린 것이다. 두 그림은 몇 가지 세부만 빼면 거의 똑같다. 보쉬는 12점의 복사화를 그렸다. 많은 이들이 주문을 했음을 알 수 있는데, 누가 작업을 도와주었는지 등의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은 서구 회화에서 자주 묘사되는 주제 중 하나다. 주제 자체가 극적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나약함과 악에 대한 유혹, 그것을 견디어냈을 때의 희열 등은 기독교의 보편적인 윤리관과 잘 어울리는 주제였다. 20세기 들어서까지 막스 에른스트, 달리 등 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다룰 정도였다.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같은 제목의 그림과 함께 회화사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플로베르 등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 속에서 다루기도 했다. 서구에서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 전설에 버금가는 유명한 전설이다. 성 안토니우스는 금욕 생활로 정신을 수련하는 수도원 제도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고, 수도사들은 돼지를 끌고 다녔고 작은 종을 울리며 보시를 받곤 해서 이들을 묘사한 그림에는 종종 돼지와 종이 등장하곤 한다.